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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lorers, Explained

Words : Yoon Kwang-jun, Chung Kyu-young

최초로 대륙을 횡단한 자동차,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과 가장 깊은 바다를 탐험한 시계… 도구로서 인간의 한계를 확장하며 역사적 순간에 함께한 ‘모험의 사물’은 컬렉터스 아이템으로 불멸의 가치를 갖는다. 그런 컬렉터스 아이템을 찾아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사물의 모험’을 통해 컬렉터는 자신의 세계를 확립하고, 거짓 없는 진실을 마주한다. 

LAND ROVER SERIES 1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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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로버 스테이션 왜건Land Rover Station Wagon. 시리즈Series 1이라고도 불리는 그 차는 대서양 남쪽에 위치한 영국령 화산섬인 어센션Ascension 섬과 세인트 헬레나St. Helena 섬에서 화려한 깃털을 지닌 새들을 찾는 관광객을 오랜 세월 실어 나른 후 몇 년 간 외딴 농장에 버려져 있었다. 유라시아 대륙 횡단, 이전엔 누구도 하지 못했던 장거리 자동차 여행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그 차의 화려한 과거를 짐작할 수 있는 건 옥스퍼드 대학을 상징하는 짙은 푸른색으로 칠해진 차체와 프런트 도어에 적힌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극동 탐험대(Oxford & Cambridge Far Eastern Expedition)” 라는 문구뿐이었다.

© the times

1955년 9월 1일,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 재학 중이던 여섯 명의 대학생 Fig.1 이 랜드로버 스테이션 왜건 두 대에 나눠 타고 런던 하이드 파크를 출발했다. 그로부터 6개월 6일이 지난 1956년 3월 6일, 그들은 지도에 없던 길을 새로 그리며 유럽과 아시아 19개국을 지나 30,000km Fig.2 이상을 달리고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여행의 이유는 간명했다. 아무도 해보지 못한 일. 그 이후 전세계적으로 육로를 이용한 장거리 자동차 여행의 붐이 일어났고, 군용 차량으로 알려져 있던 랜드로버는 모험가를 위한 자동차라는 이미지를 확립할 수 있었다.Fig.3

당시 옥스퍼드 재학생이던 팀 슬레저Tim Slessor 는 자신이 참여한 대륙횡단 여행을 기록한 책 <퍼스트 오버랜드First Overland>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고, 그 이후 BBC 다큐멘터리 팀의 일원으로 세계 여행과 모험을 계속했다. 역사적 모험을 함께 한 바로 그 차가 세인트 헬레나 섬 어딘가에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은 2017년의 일. 한가로운 은퇴 생활을 즐기던 80대의 슬레저는 또 한 번의 여행을 꿈꾼다. 60여 년 전 직접 몰고 기나긴 여행을 떠난 바로 그 차를 타고 이전의 경로를 되짚어 싱가포르에서 영국으로 향하는 대륙 횡단 여행, ‘라스트 오버랜드Last Overland’.

‘올드 걸Old Girl’ 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푸른색 랜드로버 시리즈1에는 파워 스티어링도, 디스크 브레이크도, 에어컨도 없었지만, 2년 동안의 복원 과정을 통해 예전의 컨디션을 완벽하게 찾았다. 하지만 사람은 달랐다. 계획대로라면 네팔 어딘가에서 88세 생일을 맞았을 슬레저는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출발을 며칠 앞두고 병원에 입원한다. 대신 그는 1955년의 자신처럼 스물한 살 대학생이던 손자 냇Nat 을 탐험대에 참가시켰다. 2019년 8월 25일, F1 싱가포르 개막일에 맞춰 출발한 라스트 오버랜드 탐험대는 23개국을 거치는 3개월간의 여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런던 하이드 파크에 도착했다.

6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는 이 장대한 모험을 가능하게 한 것은 자동차 한 대의 존재였다. 시리즈 1, 2, 3로 변화해온 랜드로버 스테이션 왜건의 정통성을 계승한 디펜더Defender 가 지금도 장거리 육로 여행을 꿈꾸는 이들의 동반자로 첫손 꼽히는 이유가 성능이나 실용성 때문 만은 아닐 것이다. 멸종 상태에 가까운 수동 크로노그래프 시계인 스피드마스터 Speedmaster 가 지금까지 계속 생산되며 시계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모델이 된 이유는 인류 최초의 달 착륙에 함께했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 봉을 최초로 정복한 텐징 노르가이Tenzing Norgay 와 에드먼드 힐러리Edmund Hilrary 경의 익스플로러 Explorer, 영화감독 제임스 캐머런James Cameron의 마리아나 해구 해저 11,000m 탐험에 함께한 딥씨Deepsea Fig.4 가 단순한 툴 워치, 다이버 워치 이상의 위상을 갖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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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로서 인류의 한계를 확장하고, 가보지 못한 곳에 도달하는 순간에 함께한 사물은 존재 자체로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한다. 그리고 그런 물건, 모험의 사물들은 컬렉터들의 표적이 되게 마련이다. 수집이라는 행위가 물건을 통해 단순히 필요를 충족하는 것을 넘어 특정한 물건에 담긴 이야기를 통해 경험을 확장하고, 나아가 물건을 통해 그 이야기와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자아를 확장하는 의미와 가능성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한편으로 특별한 물건일수록 직접 손에 넣고. 사용하지 않고는 절대 알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포토그래퍼이자 오디오 컬렉터인 윤광준은 지난 수십 년간 그런 물건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때때로 그에게 수집은 그 자체로 자신을 확장하는 모험의 과정이었다. 다음은 컬렉터로서 생산이 중단된 진공관 300B의 진정한 소리를 찾아 헤매며 소리와 관련한 자신의 세계를 확립한 과정에 대한 윤광준의 글이다. 거듭된 시행착오로 고통스러우면서도 행복했던 한 시절의 끝에 그가 마주한 건 최고의 진공관이나 오디오 시스템이 아니라 “좋은 것만 누리기에도 인생은 짧다”는 진실이었다.

WesterN Electric 300B
(1920)

진공관의 제왕이라는 웨스턴 일렉트릭Western Electric 의 300B를 알게 된 건 일본의 오디오 잡지 <스테레오 사운드>를 통해서다. 황금빛 철망을 두른 럭스만Luxman 파워 앰프 Fig.5 였다. 여느 진공관보다 큰 높이와 두툼한 어깨 폭에 불그스름한 히터 불빛이 더해진 제왕의 자태는 늠름했다. 말로만 들어온 명관 중의 명관이 꽂힌 앰프의 소리는 과연 어떨까? 직접 그 소리를 들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일이니 호기심만 커졌다.

© western electric

알고 보니 잡지에 실린 300B는 1980년대 미국에서 만든 복각품이었다. 1930년대 영화관 등 대규모 공간을 훌륭한 소리로 가득 채우던 진공관 300B은 오래전 생산이 중단되었다. Fig.6 그 소리를 직접 들어본 사람들의 찬사는 300B를 신화로 만들었고, 어느덧 값을 매길 수조차 없는 지경이 되었다. 신화란 실체가 모호할수록 강렬해지게 마련이다. 오디오파일audiophile 들의 애타는 부활 요청에 마지못해 응한 건 웨스턴 일렉트릭의 은퇴한 엔지니어들이었다.

이후 국내에도 300B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이때 처음 실물을 보고 소리도 들어봤다. 기존 진공관 앰프의 음색과 다른 매력이 느껴졌다. 약간 거친 듯한 음촉의 현악기의 울림은 지극히 투명했다. 소리의 거죽에 붙은 잔털들을 말끔하게 털어버렸다고 할까? 세월을 딛고 살아남은 300B의 가치를 새삼 실감했다.

동대문의 앰프 명인과 화곡동의 신예가 야심 차게 도전한 국산 싱글 앰프를 쓰기 시작했다. 부산의 한 제작자가 더 개선된 회로로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단숨에 사들인 물건도 있다. 앰프를 섭렵하면 할수록 달라지는 300B의 소리가 흥미롭기도 하고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오리지널 웨스턴 일렉트릭 앰프는 과연 어떨까 상상해 봤다. 온갖 평가는 기준점을 가질 때 명확해지지 않던가.

300B 앰프의 원형은 1920년대 만들어진 91B 이다. 당시 영화관에서 썼고 제작 대수도 많지 않아 전 세계를 통틀어 수십 대 남짓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호사가들의 ‘잇’ 아이템이 되어 억대의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었다. 내겐 ‘넘사벽’의 물건이다. 하지만 꼭 갖고 싶었다. 가질 수 없어 더욱 절실해지는 건 사랑만이 아니었다. 상황이 이러니 오리지널 91B 앰프를 복각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신화에 다가설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해보는 게 오디오 판의 도리다. 그렇게 만든 몇 대의 앰프도 사용해 보았다.

© western electric

한 컬렉터가 오리지널 웨스턴 일렉트릭 91B 싱글 앰프를 가지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다행히 다리를 놓아줄 지인 덕에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차를 몰아 청라 지구로 가는 30km 남짓한 거리가 멀게만 느껴졌다. 세월의 오염마저 관록으로 비치는 앰프의 상태는 생각보다 멀쩡했다. 시간을 거스른 기계와의 조우는 감동적이었다. 웨스턴 일렉트릭 스피커와 조합된 91B의 소리는 지금까지 듣던 300B 소리와 전혀 달랐다. 묵직한 저음의 양감이 더해졌고 막힘없이 뻗는 고역의 시원함이 돋보인 음악은 황홀했다.

성공의 확률을 높이기 위해 나는 물건을 모았을 뿐이다. 출발은 어렵지 않다. 방향을 잡을 때가 재미있고 몰입의 강도도 크다. 그 다음은 몰라서가 아니라 알기 때문에 어렵다. 분별의 대상이 점점 미세해지므로 오감을 동원해야만 구분되는 탓이다.

윤광준, 포토그래퍼 & 오디오 컬렉터

© western electric

전설로 떠돌다 신화가 된 300B의 명성은 허명이 아니었다. 가지고 있던 앰프를 몽땅 처분했다. 레퍼런스가 생겼으니 잘못된 것에 매달리는 건 오디오파일의 도리가 아니다. 버리지 못하면 더 좋은 것이 오지 않는다. 300B의 계보를 추적했다. 더 이전에 만든 웨스턴 일렉트릭 300B 각인관 (로고가 음각으로 각인된 진공관 – 편집자 주) 이 있었다. 낡아 금방 망가질 듯 위태로워 보이는 각인관의 소리는 두툼하고 부드러운 소리를 낸다. 당혹감은 계속 이어졌다. 그보다 더 과거에 생산된 진공관 300A가 들려주는 소리 때문이었다. 들어본 중 가장 매끄럽고 풍성했다. 청초한 아름다움이었다.

한계가 분명한 20세기 초엽의 기술과 재료로 만들어진 진공관이 소리라는 본질에 더욱 충실한 결과를 낸다는 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지만 300A는 대량 생산되지 못했다. 1938년부터 만든 300B가 전성기의 물건이다. 여러 개의 웨스턴 일렉트릭 300B 진공관을 전전한 끝에 1939년 생산된 300B 각인관으로 정착했다. 세월을 딛고 살아남은 낡은 진공관의 소리는 풍격이 넘쳤다. 여기에 빠져 살았던 한동안의 행복감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좋은 것만 누리기에도 인생은 짧다.

© technics

정량화될 수 없는 세계가 있다. 과거로 갈수록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웨스턴 일렉트릭 진공관은 기계라기보다는 스트라디바리우스 같은 악기의 속성에 더욱 가까웠다. 물건은 진화한다는 상식과 낡은 것의 완성도를 의심하는 편견이 무너졌다. 겪어봐야 비로소 안다. 그것은 현재이기도 하고 과거 속에 놓여 있기도 하다. 과정은 단축할 방법이 없다. 선택은 경험하는 과정에서 굳어진 확신이기 때문이다.

성공의 확률을 높이기 위해 나는 물건을 모았을 뿐이다. 출발은 어렵지 않다. 방향을 잡을 때가 재미있고 몰입의 강도도 크다. 그 다음은 몰라서가 아니라 알기 때문에 어렵다. 분별의 대상이 점점 미세해지므로 오감을 동원해야만 구분되는 탓이다. 지극한 즐거움은 여기서 생긴다. 자신만 아는 지점이 생긴다는 이유다.

필요한 물건이라면 내용을 다 알 때까지 사들이는 게 좋다. 수집은 빈 곳을 메울 때 그 쾌감이 제일 크다. 경험으로 빈 곳의 내용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아는 것만으론 반쪽의 확신 밖에 생기지 않는다.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윤광준, 포토그래퍼 & 오디오 컬렉터

steve jobs, 1982 © diana walker

확신의 선택으로 자신만의 세계가 비로소 펼쳐진다. 무모해 보이는 과정의 차이가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된다. 이런 게 어디 진공관이 내는 소리뿐일까. 인간의 관심이 미치는 모든 분야엔 감추어진 비밀이 여전히 많다. 비밀이 없는 공방만큼 쓸쓸한 게 또 있을까? 겹겹이 쌓인 비밀을 풀어내야만 그렇게 알고 싶었던 희열의 순간을 맞게 된다.

필요한 물건이라면 내용을 다 알 때까지 사들이는 게 좋다. 수집은 빈 곳을 메울 때 그 쾌감이 제일 크다. 경험으로 빈 곳의 내용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아는 것만으론 반쪽의 확신 밖에 생기지 않는다.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의 맹점이 하나 있다. 검색으로 모르는 게 없어졌다는 점이다. 그렇게 많이 안다면 실수도 하지 말아야 옳다. 더 많이 알수록 선택은 되려 어려워진다. 경우의 수가 많아질수록 확신의 강도는 약해지게 마련이니까.

아는 것에 머무른다면 지식과 정보의 한계는 확연하다. 몸의 기억으로 바뀌지 않는 앎이란 별 쓸모가 없다. 온몸의 감각이 동원된 경험은 버릴 게 없다. 알고 있는 걸 정리해 말할 수 없다면 아는 게 아니다. 물건이 사람보다 정확한 게 있다. 그 안에 담긴 성능 혹은 가치에 거짓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건을 수집하는 일은 진실과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Words : Yoon Kwang-jun, Chung Kyu-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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