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

Login

TINTIN, 1926~

Words : Chung Kyu-young

1981년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첫 작품인 <레이더스>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스티븐 스필버그는 프랑스 미디어 평론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Tintin’ 이라는 알파벳에 주목했다. “그건 영화였어요. 아름답게 표현된 스토리보드였지요. 프랑스어를 몰랐지만, 스토리와 거기 담긴 유머를 전부 이해할 수 있었어요.”   

Hergé & Andy Warhol © Studios Hergé

처음 모험을 떠난 지 92년이 지났지만, 땡땡과 반려견 밀루는 조금도 나이를 먹지 않는다.  그동안 <땡땡의 모험> 시리즈는 110개 언어로 총 2억 8천만 부 이상 판매되었고, 애니메이션과 연극, 뮤지컬, 영화 등으로 제작되며 지금도 매년 전 세계에서 200만 부 이상 발행된다. 간명한 선으로 그려낸, 선한 마음을 가진 소년이 간교한 악당의 음모를 물리치는 이 단순한 이야기 속엔 아이들이 열광하는 슬랩스틱 코미디와 미묘한 정치, 사회, 심리적 갈등과 괄목할 만한 성장이 절묘한 균형을 이룬다. 


영화배우 휴 그랜트는 무인도에 가져갈 단 한 권의 책으로 땡땡의 모험 중 하나인 <오토카 왕국의 지휘봉>(1939) Fig.1 을 꼽았고, 전쟁 영웅인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은 만화책 속 10대 소년인 땡땡이 자신의 유일한 라이벌이라고 말했다. 땡땡의 작가 에르제Hergé 의 고향인 벨기에 브뤼셀 중앙 광장엔 땡땡과 밀루의 동상이 서 있으며, 전후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 미셸 세르Michel Serres 는 에르제를 ‘현대 프랑스인들의 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작가’로 상찬했다. 2021년 1월 열린 경매에선 <푸른 연꽃>(1936)의 표지 원화가 320만 유로(한화 약 43억 원)에 낙찰되며 역사상 가장 값비싼 만화 작품이 되었다. Fig.2 

Fig.2 © Archyde

모험, 수수께끼, 보물

<소비에트에 간 땡땡> (1930) 부터 마지막 완결작인  <땡땡과 카니발 작전> (1976) 까지 땡땡의 모험은 땡땡과 밀루, 아독 선장과 쌍둥이 형사 뒤퐁, 뒤뽕 등이 우스꽝스러운 실수를 저지르는 사소한 개그로 시작해 점차 큰 플롯으로 발전하는 형식을 반복한다. 어린이 대상 주간지에서 연재하던 처음의 방식을 계속 발전시킨 것. <소비에트에 간 땡땡> 과 <콩고에 간 땡땡> (1931), <미국에 간 땡땡> (1932) 등 초기작은 구소련과 콩고, 미국 등 이국적인 배경과 악당을 처단하는 큰 줄거리 외엔 슬랩스틱 코미디의 연속으로 이야기를 느슨하게 이어 나간다. 하지만 초기 걸작인 <파라오의 시가> (1933) 와 <푸른 연꽃> (1936) Fig.3 (이 작품 속 땡땡의 불시착을 그린 2페이지 짜리 스프레드는 2015년 소더비 파리Sotheby’s Paris에서 20억에 낙찰되기도 했다) 부터 땡땡은 추리를 통해 미스터리를 밝혀내고, 단선적이던 이야기 역시 두 가지 이상의 소재가 씨줄과 날줄처럼 얽히기 시작한다. 

점차 발전하던 스토리텔링은 <유니콘 호의 비밀> (1943) 과 <라캄의 보물> (1944) Fig.4 을 통해 완성 단계에 이른다. 에르제는 처음으로 두 권으로 완성된 이 연작을 통해 유니콘 호 모형 발견과 미스터리한 지갑 도난 사건, 아독 선장의 가족사 등 세 가지 이야기를 절묘하게 구성했다. 할리우드에서 제작한 최초의 땡땡 영화이자, 다시금 전 세계적으로 땡땡의 모험이 새롭게 주목받는 계기가 된 <틴틴 – 유니콘호의 비밀> (2011) 은 이 연작과 <황금 집게발 달린 게> (1941) 를 원작으로 한다. 연출과 제작을 맡은 스티븐 스필버그와 피터 잭슨은 24권의 만화 중에 <유니콘 호의 비밀>과 <라캄의 보물>에 담긴 ‘엄청난 모험과 근사한 수수께끼, 보물이 등장하는 멋진 스토리’ 때문에 골랐다고 밝혔다. 

Fig.4 © Hergé – Moulinsart


이미 완성된 연작에 <황금 집게발 달린 게>를 더한 가장 큰 이유는 땡땡의 가장 믿음직한 조력자 아독 선장 Fig.6 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땡땡은 카라부잔 호의 선창을 통해 아독 선장의 방으로 뛰어들어 술에 취해 사악한 악당이 유폐한 아독 선장을 구해낸다. 처음에는 상황에 따라 운율까지 맞춰가며 내뱉는 200여 가지가 넘는 창조적 욕설 외에는 쓸모없는 주정뱅이에 불과하던 아독 선장은 땡땡과 낯선 세계를 모험하며 친구이자 조력자로서 가족 같은 존재가 되어 마지막 모험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함께 한다. 한결같이 정의로운 땡땡과 달리, 아독 선장은 알코올 중독과 시도 때도 없이 내뱉는 욕설 외에도 수많은 결점을 지닌 캐릭터라는 점이 역설적으로 그의 핵심적인 매력을 구성한다. 땡땡의 모험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를 묻는 질문에 에르제는 이렇게 답했다. “아독 선장이죠. 그에겐 너무 많은 결점이 있어서, 나는 그가 거의 가까운 친구, 형제이자 제2의 나 자신으로 느껴집니다.”


나는 땡땡입니다

흥미로운 건, 생전 에르제는 “마치 플로베르Flobert 가 ‘보바리 부인은 바로 나다!’라고 이야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아독 선장뿐 아니라 땡땡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나의 눈이자 감각이고 폐이자 위장이다”라고 밝혔다는 사실이다. 에르제는 종종 자신의 삶, 혹은 당대의 사건들에서 비롯된 순간이나 에피소드를 ‘땡땡의 모험’에 포함시키곤 했다. <푸른 연꽃>에는 자신과 중국인 친구 창의 우정, 폭풍 전야와 같은 중일 전쟁이 담겨 있다. <유니콘 호의 비밀>에서 그는 아독 선장의 뿌리를 찾아가는 모험을 통해 자신의 가족이 가진 곤란한 계보 (벨기에 왕족의 숨겨진 자손이라는 소문) 를 환기시켰다. 수염 외에는 옷차림까지 동일한 형사 뒤퐁과 뒤뽕 콤비는 쌍둥이이던 자신의 아버지와 숙부를 모델로 한 것이다. 땡땡 역시 어린 시절 보이스카우트로 활동하던 시절의 이상을 투영한 캐릭터다. “나는 땡땡입니다. 나는 영웅이 아니지요. 하지만 모든 열다섯 살 소년처럼 영웅이 되기를 꿈꿉니다. 나는 꿈꾸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클래식카 애호가들이 열광할 만한 장면이 <노예선>에 등장하는데, 땡땡과 아독 선장의 근거지인 물랭사르 성 앞마당에 20여 대의 스포츠카가 모여드는 순간이다. 에르제는 이 장면에도 당시 직접 몰고 다니던 푸른색 포르쉐 356을 은근슬쩍 등장시켰다.

Fig. 7 © Hergé – Moulinsart

자신의 이상과 비밀스러운 가정사에 반해 에르제는 땡땡의 모험에 등장하는 배경과 사물을 철저히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사실성은 에르제의 작품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요소이다. 만화가이기 이전에 저널리스트이던 에르제는 가장 익숙한 대상부터 낯설고 희귀한 대상들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세계와 거의 동일한 세계를 제시한다. 15년 후 아폴로 11호의 달착륙을 예언하는 것처럼 원자력으로 구동되는 로켓을 타고 달을 여행하는 <달나라에 간 땡땡> (1954)은 첨단 기술에 밝은 과학자들과 함께 수많은 과학 기술 문서를 조사, 연구한 결과였다. 

Fig. 8 © Hergé – Moulinsart

땡땡의 모험에는 달로 향하는 로켓 외에도 기차와 트럭, 비행기와 헬리콥터, 기구 등 수많은 탈것이 등장하는데, 그중에서도 20세기 중반 가장 빠르게 발전한 기계장치인 내연기관 자동차의 묘사가 특히 빼어나다. Fig.7 땡땡의 아이코닉한 실루엣을 완성하는 앞머리 역시 첫 작품 <소비에트에 간 땡땡> 의 11페이지에서 메르세데스-벤츠 타입 S 로드스터를 타고 질주하다가 탄생한 것. Fig.8 처음엔 이마에 차분하게 붙어 있던 땡땡의 앞머리는 그 후로 지금껏 바람에 날리고 있다. 이제까지 출간된 땡땡의 모험에 자동차가 등장하는 장면은 총 216개 Fig.9 (http://dardel.info/tintin) 로, 초기작에선 구체적인 모델을 쉽게 알아보기 어렵지만, 고유한 이야기 구조가 확립되기 시작한 <파라오의 시가> 이후 작품들에서는 당대를 대표하던 자동차들을 거의 집착에 가까울 정도의 정확성으로 실제 모델에 근거해 그려냈다. 

Fig. 9 © Les Autos De Tintin

에르제 자신 역시 아름다운 라인을 지닌 스포츠카의 열렬한 애호가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클래식카 애호가들이 열광할 만한 장면이 <노예선>(1958) Fig.7 에 등장하는데, 땡땡과 아독 선장의 근거지인 물랭사르 성 앞마당에 20여 대의 스포츠카가 모여드는 순간이다. 에르제는 이 장면에 당시 직접 몰고 다니던 푸른색 포르쉐 356을 은근슬쩍 등장시켰다. 에르제는 히치콕이 자신의 영화에 등장하거나 만화가 스탠 리가 마블 유니버스에 출연하는 것처럼 자신의 차들을 땡땡의 모험에 카메오 출연시켰다. <오토카 왕국의 지휘봉>의 오펠 올림피아Olympia 와 <검은 섬>의 란치아 아프릴리아Aprilia 가 바로 그 차들이다. 


끝을 내지 않았기에 끝나지 않는 이야기

“확실히 나의 어시스턴트들이 나 없이도 할 수 있으며, 심지어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Fig.8 그러나 땡땡, 아독, 해바라기 박사, 뒤퐁과 뒤뽕을 비롯한 모든 다른 캐릭터들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에 관한 한 나는 이를 해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들이 땡땡을 맡는다면 더 잘 해내거나 혹은 잘 해내지 못할 수도 있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들은 나와는 다르게 해낼 것이며, 그 작품은 더 이상 땡땡이 아니게 될 것이다.” 1979년 백혈병 진단을 받은 에르제는 4년 후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죽음의 순간에 그는 “단지 분자들이 분산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온하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Fig.8 © Hergé – Moulinsart

영화배우 휴 그랜트는 무인도에 가져갈 단 한 권의 책으로 땡땡의 모험 중 하나인 <오토카 왕국의 지휘봉>(1939)을 꼽았고, 전쟁 영웅인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은 만화책 속 10대 소년인 땡땡이 자신의 유일한 라이벌이라고 언급했다.

에르제는 그의 사후에 미완성작인 <땡땡과 알프아르>를 포함해 누구도 더 이상 땡땡의 모험의 이야기를 이어 나가지 않기를 바랐다. 단 하나 예외가 있다면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넘긴 영화화 권리였다. 1981년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첫 작품인 <레이더스>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그는 프랑스 미디어의 평론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Tintin’이라는 알파벳에 주목했다. 그렇게 틴틴의 모험에 대해 알게 되어 만화책을 구해 본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건 영화였습니다. 아름답게 표현된 스토리보드였지요. 프랑스어를 몰랐지만, 스토리와 거기 담긴 유머를 전부 이해할 수 있었어요.”Fig.9

Fig.9 © Hergé – Moulinsart

 대륙을 사이에 둔 전화 통화를 통해 에르제가 스필버그의 데뷔작인 <듀얼Duel>과 <레이더스>의 팬이라는 걸 알게 된 스필버그는 땡땡의 모험을 영화화하기 위해 벨기에로 떠나려 했지만, 악화된 에르제의 건강 때문에 만남은 성사되지 못했다. 그리고 30년 가까이 지난 2011년이 되어서야 땡땡은 3D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커다란 스크린에서 밀루, 아독 선장과 함께 앞머리를 바람에 날린 채로 다시 한번 여행을 떠난다. Fig.10

Fig.10 © WETA Digital

20세기 유럽 대중문화가 만들어낸 가장 매력적인 작품인 땡땡의 모험은 어른이 되어서도 즐길 수 있는 동시에 드물게 자녀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사줄 수 있는 만화책이기도 하다. 수십 년째 소년인 땡땡은 덩치만 큰 어른들에 용감하게 맞서 그들의 어두운 음모를 밝힌다. 언더독의 이야기는 어디에서나 환영받지만, 에르제의 조국이 프랑스와 독일, 네덜란드라는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은 소국 벨기에라는 사실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10대 소년처럼 보이는 외모와 작은 키이지만 클래식한 복식과 기자로 일하며 홀로 영위하는 생활, 자동차는 물론 모터보트와 전투기까지 온갖 탈 것을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능력 탓에 작품 속에서 땡땡의 나이를 짐작하기는 어렵다. 기자라지만,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하기 보다는 악당을 물리친 후에 그가 스스로 취재원이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시대와 땡땡이 사는 곳 역시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으며, 함께 모험을 떠나는 동료들 외엔 가족이나 연인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이러한 모호함은 땡땡이 오랜 생명력을 유지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다. 땡땡Tintin 은 프랑스어로 쇠붙이가 부딪히는 의성어이기도 하지만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뜻도 품고 있다. 땡땡은 그 누구도 아니기에 누구라도 땡땡의 모험을 읽는 중엔 자신을 땡땡에 이입할 수 있다. 


에르제의 유언에 따라 더 이상 새로운 땡땡의 모험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마치 세상이 끝나는 최후의 전쟁인 라그나로크Ragnarok 가 벌어지지 않기에 영원히 생생하게 읽히는 북유럽 신화처럼, 땡땡의 모험은 끝을 내지 않았기에 영원히 새롭게 시작된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땡땡을 처음 만난 아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지껄이는 아독 선장의 욕설에 속 시원해 하고, 문간마다 머리를 부딪히고 난간마다 걸려 넘어지는 뒤퐁과 뒤뽕 형사의 슬랩스틱 코미디에 깔깔거리면서 땡땡과 그의 반려견 밀루와 함께 새로운 나라를 여행하고, 가슴 두근거리는 모험 속에 거듭되는 위기를 벗어나 마침내 악당을 물리칠 것이다.

그렇게, 땡땡의 모험은 영원히 계속된다. 

Words : Chung Kyu-young


READ THIS NEXT